삼국지W - 관도대전 장수 추천 이벤트 삼국지W
2009.12.03 01:16 Edit
관도 대전?
관도 대전(官渡大戰)은 중국 후한 말 삼국시대 초기 관도(官渡)에서 조조와 원소가 벌인 큰 전투이다. 적벽 대전과 이릉 대전과 함께 삼국시대의 흐름을 결정지었던 중요한 전투이다.
좁은 의미로는 관도에서 벌어진 전투라고 볼 수 있으나, 넓은 의미로는 원소와 조조의 일련의 항쟁을 합친 큰 전투였다. 백마 전투를 전초전으로 시작하여 원소의 곁에 있던 유비는 여남(汝南)에서 교란작전을 일으키는 등 중원 일대를 둘러싸고 벌어졌다.
이 시점에서 양군은 일시적으로 태세를 정비하고 조조군은 관도로 물러났고, 원소는 양무(하남성 원양현)로 군을 움직였다. 이때 저수는 “북쪽(원소 진영)은 숫자가 많으나, 용맹함에는 남쪽(조조 진영)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군량에 대해선 남쪽은 적고, 북쪽은 풍족합니다. 남쪽은 속전속결을 바라니 북쪽은 지구전이 유리합니다.”라고 말하며 지구전을 간언했으나 원소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원소는 조조군을 공격해 동서 수십리에 걸쳐 진을 구축하고 서서히 전진하는 전술로 조조의 진영을 압박했다. 조조도 진영을 나눠 전투를 벌였으나, 패배하고 요새로 돌아왔다. 원소는 토산을 쌓거나 지하도를 파서 성벽을 무효화하려고 했으나, 조조도 내부에 똑같은 것을 만들어 대응했다. 원소는 망루를 만들어 토산에서 조조 진영 안으로 화살을 쏘았다. 조조군은 이 공격에 고전하였으나, 우금이 토산의 지휘를 맡아 분전하여 조조군의 전의를 불태웠다. 또한 조조는 발석차를 만들어 망루에 대응했다.
전황은 지구전 양상을 띠기 시작했고, 조조 진영의 식량은 나날이 줄어들어갔다. 걱정이 된 조조는 본거지를 지키던 순욱(荀彧)에게 편지를 보내 철수에 대한 상담을 했으나, 순욱은 철수에 대한 상담 대신 예상 밖의 일을 예측하고 기회를 노리면 기필코 승리할 수 있다고 조조를 격려했다.
한편 남쪽 여남에서 조조의 형세가 나빠진 것을 본 유벽(劉辟)이 원소에 호응해 반란을 일으켰고, 원소는 그를 지원하기 위해 유비를 파견했다. 조조는 조인(曹仁)을 파견해 이들을 격파했다. 패배한 유비는 유표곁으로 도망쳤다. 또한 조조는 순유의 진언에 따라 서황(徐晃)과 사환(史渙)에게 명령해 원소군의 수송대를 공격해 수천대의 곡물수송차를 불태웠다.
하지만 원소는 관도에 조조를 묶어둔 채 지속적으로 자신에게 호응하는 반란을 유도했고, 점차 조조군의 전황은 크게 악화되었다. 이때 원소 진영의 허유(許 攸)는 비리가 탄로나 가족이 투옥당한 일이 있어 설 자리가 적어졌으므로 원소에게 군사를 나눠 허도를 습격하자는 적극적인 헌책을 했으나 원소는 응당 관도에서 조조를 포위해 사로잡아야 한다고 보아 거절하였다. 자신의 계책이 거절당한 데에 분노한 허유는 더이상 원소 밑에서 출세하기가 어렵다고 보아 조조진영에 투항해 왔다. 허유는 순우경(淳于瓊)이 원소군의 병량을 운송하는 것과 순우경이 오소(烏巣)에 주둔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이곳을 기습할 것을 진언했다. 조조의 측근의 대부분은 이 허유의 발언을 의심했으나, 순유와 가후(賈詡)만이 이 의견을 지지했다. 이에 조조는 즉시 행동을 개시해 직접 보병과 경기병 5천을 이끌고 기습해 순우경의 군량 경비군을 섬멸하고 순우경을 참수했다.
한편, 오소에 있는 순우경이 습격당한 것을 알게 된 원소는 순우경이 지키는 오소가 쉽게 함락 당할 리 없다고 보고, 오히려 조조의 주력이 빠져나가 수비가 약해진 본진을 공략해야 한다고 판단해 장합(張郃)과 고람(高 覧)에게 주력군을 내어 조조의 본진을 공격하게 했으며 순우경에게는 기병을 보내 지원했다. 하지만 오소의 군대는 맥없이 전멸당했고, 순우경군이 전멸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원소 진영은 책임 소재를 두고 내분이 벌어졌다. 이에 장합이 배신하여 원소를 공격했으며 진영을 불태우고 조조에게 투항했다. 장합의 공격을 받은 원소는 단지 800명의 기병만을 이끌고 갑옷도 입지 못한 채로 급히 도망쳤는데, 예상치 못한 아군의 습격에 더해 총사령관의 행방과 생사마저 알 수 없었던 나머지 군사들은 대혼란에 빠져 사실상 완전히 무너졌다.
원소의 패배를 가져온 직접적인 원인은 부패한 관료 허유의 배신이었지만, 사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든 것은 군의 수장 원소와 그의 근위세력인 곽도등의 지나친 독선과 오만함이었으며 이로 인해 간부들의 배신이 속출한 것이다.
삼국지W - 관도 대전 추천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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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위서》 원소전의 주석에 따르면 역사가 손성은 [전풍, 저수의 지모는 옛 전한의 건국공신 장량, 진평에 필적할만한 것이다]라고 극찬하였다. 사실 4주 평정까지는 순조로왔던 원소가 건안 4년 이후 저수의 진언을 특히 무시하면서부터 그의 추락이 시작되었다. 관도 전투에서도 저수의 진언을 받아들였다면 승패는 역전할 가능성이 높았다는 말도 있었다.
일반적인 저수의 이미지는 문약한 참모의 이미지였으나, 실제로는 감군 및 도독을 맡았던것을 보더라도 매우 탁월한 전략안을 가진 군사령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삼국지연의》에서 저수는 처음 한복의 부하였던 것에 지나지 않았다. 거의 사실(史實)과 비슷한 생애를 보내어 비극의
참모로써 사라지는 그의 모습이 묘사되었다. 다만 조조와의 전투에서 지구전 전략이 원소에게 받아들이지 못한것에 불만을 품고 다른
무장들과 연대하지 않는 장면도 있다.
관도 전투에서 지구전 전술을 설명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구금당할 때 불길한 별이 출현하자 이것을 원소에게 알렸지만 무시되었다. 원소가 패배하자 저수는 조조의 항복 권고을 뿌리치고 죽음을 선택한 것은 사실과 같다. 조조는 [충렬저군지묘(忠烈沮君之墓)]라고 새겨진 묘를 황하의 건너는 장소에 세워 그의 죽음을 기렸다.
추천 장수 2 - 순욱
200년 관도 전투에 이르러, 공융이 원소군의 강력함을 이야기하자 순욱은 원소군에 있었던 경험에서 그들의 약점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실제 관도 전투에서 순욱이 이야기한 대로 진행되었다. 순욱은 관도 전투에서 본거지의 수비를 맡았는데, 조조가 전쟁도중 약세라고 느껴, 돌아가는것이 어떻겠냐고 그에게 문의할때가 있었다. 순욱은 이것에 반대하고 조조를 격려했다. 또 조조가 원소에게 일단 승리한 후에 원소와의 결전은 중지하고 남쪽의 유표와 싸우려고 하자, 순욱은 "원소가 남은 무리를 수습하고 빈틈을 이용한다면 공은 성공할 수 없을 것." 이라고 말하며 반대했다. 이 진언에 따라 조조는 황하를 두고 원소와의 대치를 계속했고, 원소가 죽은 뒤 원소의 세력이 내분에 빠지자 이 틈을 공격하여 하북의 대부분을 세력권에 넣을 수 있었다.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그와 연장자인 조카 순유, 그리고 모사 가후, 이 3사람을 같은 권에 넣었다.(삼국지 위서 10권). 진수의 순욱에 대한 평가는 순욱은 청아한 풍모와 왕좌의 풍격, 그리고 선견지명을 갖추고 있었다고 말했다.
양쪽 진영 모두 뛰어난 지략가 저수와 순욱이 있었지만,
순욱의 조언을 받아 들여 관도 대전을 승리로 이끈 조조와는 반대로,
저수의 조언을 무시한 원소는 관도 대전을 패배하고 만다.
원소가 저수의 조언을 받아 들여 관도 대전을 지구전으로 펼쳤다면... 관도 대전의 승패는 달라졌을지도...??
곧 제갈량이 업데이트 된다면 5성 지장은 당연히 제갈량,
순욱은 곽가, 주유와 함께 4성, 저수는 3성 정도가 어떨까요...??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니, 태클은 사절! 하겠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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